마이크 피키스의 <호텔>은 전작 <타임코드>에 이은 또 하나의 디지털 작업 결과물이다. 베니스의 호텔에 일군의 영화 스태프들이 도착한다. 이들은 존 웹스터의 <말피의 공작부인>을 영화화할 계획이다. 얼마 후 감독인 트렌트는 총상을 입어 코마상태에 빠지고 제작자 조나단이 그를 이어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과연 영화는 완성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호텔에는 감추어진 비밀이 하나 있다. 여기서 피기스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공간에 위치한 배우들의 연기를 동시에 잡아내는가 하면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진 쇼트들은 분할 화면을 통해 스크린 상에 한꺼번에 보여 지며 화면의 종횡비 또한 매우 가변적이어서 내/외화면 공간의 전통적인 구별은 거의 의미를 잃고 만다. 카니발리즘과 뱀피리즘이 도사리고 있는 고풍스런 베니스의 호텔을 무대로 고전적 비극을 영화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시대의 매체로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뜻 라스 폰트리에의 <킹 덤>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호텔>은 피기스가 마치 피터 그리너웨이처럼 내러티브를 다중화하고 디지털 매체의 인터페이스를 내부에 끌어들이는 한 편 카메라(주로 PD 100이 사용되었다)에 내장된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서 매우 독특한 잡종성의 미학을 선보인다. 마이크 피기스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자신과 영화의 한계를 탐사하는 야심만만한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