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머리가 모자라기는 하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테루의 직업은 할머니의 세탁소에서 남의 옷가지를 훔쳐가려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이 세탁소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든다. 어느 날 한 아름다운 여인이 이 세탁소에 나타난다. 테루는 그녀가 놓고 간 옷가지 하나를 발견하고 이를 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뒤쫓아 간다. 그녀의 이름은 미즈에. 과거 사랑한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은 그녀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은 이 두 남녀의 거의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테루와 미즈에의 관계는 일련의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지속된다. 교도소에서 갓 출감해 나온 미즈에가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언덕 위로 날아가는 일군의 비둘기 떼를 보고 테루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우연은 <세탁소>가 지닌 순정만화적인 감수성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구조적인 계기이다. 테루와 미즈에는 거대하게 솟아 있는 가스탱크들을 보고는 이것이 점점 부풀어 올라 언젠간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세탁소>는 일상의 주변을 감싸고도는 불안을 사뿐히 통과하면서 사람간의 사랑과 이해, 공감의 가능성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