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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잠> 김솔해, 이도진 감독, “삶에서 포기가 안 되는 무언가에 대한 영화다”
난임부부인 지연(김시은)과 도진(이도진) 부부는 병원에서 또다시 유산 소식을 듣는다. 아내의 몸 상태가 먼저인 도진은 이쯤에서 시험관 시술을 멈추고 싶지만 지연은 아니다. 지연이 더 가열하게 임신에 매달릴수록 도진의 의지는 사그라든다. <통잠>은 오랜 시험관 수술 끝에 완전히 소진돼버린 부부의 생활을 사실감 있게 포착한다. 지독할 정도로 인물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원하는 삶을 위해 전부를 건 여성을 온전히 비추는 데 성공한다. <통잠>을 공동연출한 김솔해 감독과 이도진 감독은 비바람 속에 야외 행사를 치르고 왔음에도 첫 장편 연출작이 한국경쟁에 올랐다는 감사함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준 비화에 따르면 <통잠>에는 영화인의 숙명적인 과제인 “나는 왜 영화를 하는가”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김솔해 감독과 이도진 감독은 독립 장편 <한 채>(2023)의 조연출과 배우로 참여한 공통분모가 있다. 이 영화에서의 인연이 <통잠>의 시작이었는지.
이도진 그 전부터 같이 작업하기로 약속했었다. <한 채>의 허장, 정범 감독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영화학과 연출 전공 동기다. <통잠>은 학기 중에 내가 개발하던 시나리오였다. 1년 반 정도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통잠> 내용을 익히 알던 김솔해 감독이 내게 협업을 제안했다.
김솔해 <통잠>이 내게는 미련과 집착에 관한 영화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보니 내가 먼저 같이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이도진 감독은 난임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어떻게 처음 쓰게 됐나.
이도진 단편 작업만 2편 해보고 장편은 처음인 터라 잘 아는 이야기를 다루는 게 그나마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꽤 긴 기간 난임을 겪었던 내 경험을 썼다. 내가 <통잠>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솔해 감독이 파악한 대로 인생이 피곤하고 괴로워질지라도 포기할 수 없고, 열망해도 절대 가질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그 무언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솔해 누구에게나 그렇게 포기가 안 되는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1년 가까이 고생스럽게 시나리오를 함께 수정하면서 그 공감의 포인트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넓히고자 했다.
-시나리오 작업이 특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디서 막혔던 건가.
이도진 우리는 늘 굉장한 고민에 빠지게 했던 질문이 있다. ‘도대체 지연은 왜 그렇게까지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건데요?’라는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도 그 답을 몰라 많이 헤맸다. 나름의 답을 구해 수십 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를 써봤는데 전부 애초에 우리가 가려 했던 방향과 전혀 달랐다. 거기까지 가니 우리는 그저 그 상황에 처한 인물을 담고 싶었던 거라는 걸 깨달았고 그쯤 돼서야 글에도 진척이 있었다.
-영화는 초반에 유산 직후 약국에서 거짓말을 하고 임신부의 처방전을 구걸하는 지연의 이상 행동을 보여주며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이도진 지연과 도진이 난임으로 매우 지치고 힘든 상태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초반에 시술과 유산을 반복하는 과정을 다 펼치는 건 극을 늘어지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소 강도 높고 센 행동을 보여주는 걸 선택했다. 지연의 행동을 우리가 지어낸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인터넷에서 찾고 또 찾다 보면 한 건 정도 나오는 사례들을 가져왔다.
김솔해 관련해서 지연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와 같은 여성으로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어떻게, 어디까지 표현했을 때 지연이 보이는 보통 이상의 행동이 관객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주로 의논했다.
이도진 지연이 미친 사람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던 김시은 배우를 납득시키고자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우리가 왜 삶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연기, 연출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 이걸 하고자 무엇까지 했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배우와도 작품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던 것 같다.
-도진을 아내를 이상한 여자 취급하는 나쁜 남편으로 쉽게 갔다면 지금처럼 부부 캐릭터가 양쪽 다 고루 살지 못했을 것 같다. 도진을 직접 연기한 이도진 감독의 캐릭터 해석이 궁금하다.
이도진 성격적으로 도진은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만하자는 말도 더 해보자는 말도 아내에게 무리가 될까 할 말을 삭히는데 그런 면이 나와 많이 닮았다. 역할적으로는 난임 문제에 있어 남편은 그가 얼마큼 아이를 원하든 방관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의 심리를 쫓아가는 걸 주축으로 남편이 겉도는 모습도 함께 가져갔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 아기에게 가장 원한다는 ‘통잠’을 제목으로 선택했다.
김솔해 도진 감독의 아이디어다. 지연 부부가 진짜 가지지 못한 희망과 같은 단어를 찾고 싶었는데 도진 감독이 ‘통잠’ 얘기를 해주었고 듣고 나서 이거다 싶었다.
이도진 실제로 육아를 해봤기에 아기의 통잠을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잘 안다. (웃음) 내가 주목한 건 아기가 통잠 자는 욕망이 충족되니까 곧바로 다른 걸 욕망했다는 점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속성을 통잠이라는 단어에 채워 넣고 싶었다.
-<통잠>은 뜻밖에도 두 감독의 삶과 밀접히 결부된 영화다.
김솔해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다가 뒤늦게 영화를 시작했다.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영화가 좋아졌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큰 용기를 냈다. 그만큼 오래 계속하고 싶다.
이도진 고등학생 시절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세상에 많은 회의가 들 때 영화가 많은 위로가 됐다. 연출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연기가 더 좋았다. 대학 연기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삶이 경제적으로 퍽퍽해질 때는 그만뒀다가 또 먹고살 만해지면 다시 연기를 했다. 극단에서 만난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고 연극도 올리다 보니 연출을 다시 하고 싶어져 지금의 대학원에 들어왔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거의 평생을 영화, 연극의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살아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일이 아니면 나는 불행하다. 그래서 놓을 수가 없다.
-두 분 모두 필모그래피에 이제 장편 하나가 들어온 신예 감독인 만큼 앞으로 키워 보고 싶은 이야기가 무진할 것 같다.
김솔해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회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으로 이어지는 성공한 삶의 단계를 쫓는 과정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그런 세태를 짚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도진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내 뜻대로 바꾸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 마음을 창작자로서 들여다보고 싶다. <통잠>을 준비하는 동안 저출생의 시대에 난임 부부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어디선가 소외된 사람을 위로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글 이유채 /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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