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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4 인터뷰: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
2024-05-06 00:00:00Hits 797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 숀 네오 감독, ‘우연에 영화를 맡기다’

미츠에(반자이 미츠에)의 발이 닿는 곳엔 불안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영화를 찍으려는 꿈을 안고 떠난 싱가포르에서도, 전 애인을 향한 미련과 새로운 동료와의 만남이 가득한 도쿄에서도, 평안과 침묵이 가득한 고향 홋카이도에서도 그녀는 쉬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현대인의 고독은 더 이상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내면의 정처 없음은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의 감각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싱가포르와 일본을 오가며 기회를 찾아 헤맸다던 숀 네오 감독은 자신이 느꼈던 위태로움을 작품에 녹여냈다.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는 즉흥의 시대를 떠올리며 우연에 영화를 맡긴 숀 네오 감독을 만나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이 그린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함께 따라가 보았다.

-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 있다.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은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만들게 됐다. 당시 싱가포르 영화 산업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고 내게 주어진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더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싱가포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얽힌 여러 관계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일본에 도착한 지 4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내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게 되었다.

-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까지 영화를 완성하는데 5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싱가포르에 영화를 찍으러 갔다가 아무것도 미츠에의 상황이 떠오른다.

엔딩 크레딧에도 나오지만 어떤 지원이나 투자도 받지 못한 작품이다. 나를 포함해 스태프들도 현업에 종사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편집까지 3년간 이 작업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는 좀 끝내자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 했다. 두세 달 뒤 편집자에게 다시 이 영화를 집요하게 잡아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1년을 더 편집에 쏟게 되었다. 편집자와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번 전주 영화제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여전히 개선할 부분을 찾았다는 말을 꺼내더라. (웃음)

- 영화를 완벽하게 즉흥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이 인물에 충분히 확신을 얻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가 관객에게도 닿기 위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촬영장에서 각 배우가 자유롭게 펼친 언어와 행위를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적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텅 빈 수영장에서 미츠에가 전 애인에게 왜 결혼했는지 묻는 장면이 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 끝에는 재회의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츠에가 싱가포르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계기가 바로 전 애인의 안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자이 배우는 그 상황에서 전 애인과의 재회 가능성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선택을 했다. 만약 내 생각대로 영화를 진행했다면 미츠에는 절대 홋카이도로 향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본보다는 직관적인 현장의 반응에 기대어 작업한 것일까.

이 영화에는 각본이 없다. 그래서 편집자의 공이 큰 영화다.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미지들을 배열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의도를 알려주고 연속성을 확보하기보다는 편집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인물의 행동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인간이라면 어떤 공간에 던져졌을 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겠다는 계산이 있지 않은가. 가령 카페에 도착하면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하고 마시는 일련의 동선이 있다. 인물이 우리의 예측을 그대로 이행할지 아니면 기대를 배반할지를 지켜보는 것이 영화의 층위를 더하게 된다.

-촬영감독과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프레임을 구성하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

인물만큼이나 공간이 중요하다. 나는 항상 공간과 인물이 서사의 바깥에서 새로운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기존의 TV 드라마 작법에서 인물은 언제나 다른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공간은 대화의 종결점에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에서 인물은 대화의 강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이 걷다가 갑자기 벽 뒤로 사라지는 순간을 가정해 보자. 대상이 부재해도 우리는 소리나 공간 등을 통해 공백의 순간을 상상으로 채울 수 있다.

-미츠에는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와 싱가포르 그리고 도쿄까지 곳을 배회한다.

아사히카와는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이다. 그래서 아사히카와와 싱가포르가 감정적으로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물리적 크기와 상관없이 두 공간 모두 미츠에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곳이다. 미츠에는 아사히카와의 가족과 물리적인 유대를 맺지 못한다. 집 안의 사물들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도 그녀는 소외감을 느끼지만 이방인 호스트와 밀접한 접촉의 시간을 갖는다. 한 인물의 소속감은 공간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미츠에는 가이드 일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싱가포르의 풍경 대신 지옥 박물관을 보여준다. 정적인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미츠에는 영화를 찍기 위해 싱가포르에 왔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지 않은 배우다. 동시에 미츠에는 싱가포르를 떠나오며 수많은 관계를 포기했던 나를 의미한다. 당시의 나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공허함을 느끼며 내면의 지옥을 느꼈다. 하지만 가이드일을 하는 미츠에는 이 지옥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덤덤하게 아이들에게 지옥도를 설명한다. 그래서 이 즉흥적인 장면이 참 흥미롭고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영제에 담긴 endless라는 단어와 일제인 ‘まだまだ (마다마다)’의 의미인 yet같은 다른 느낌이다. 미츠에는 도대체 끝없 쫓고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일본어 제목인 ‘まだまだ (마다마다)’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 뜻과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영어로 제목을 옮기면서 정확하게 이 층위를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었다. 그 때 ‘분기 수명의 위기(Quarter Life Crisis)’ 라는 대중 심리학의 용어를 떠올렸다. 실질적인 인생의 위기를 직면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 세대들이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책임을 수반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의미하는 용어다.

[글 최현수 /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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