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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맘마로마
▲은빛 지구
JeonjuIFF #3호 [기획] 난폭한 몽타주의 장소
신설된 ‘시네필전주’ 섹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장 뤽 고다르를 접속사 ‘그리고(et)’의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고다르의 영화가 규정된 동사나 명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무분별한 결합이자 모든 것을 변주하는 기제라는 뜻이다. 교과서적인 관점에서 고다르의 작업은 영화 문법을 해체한 혁신적 영화로 이해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기존의 원리를 해체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다르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무관해 보이는 대상과 의미를 끝없이 접속하게 하는 ‘그리고’의 몽타주를 실천한 작가이다. A와 B를 인과율이나 동일성으로 연결하지 않는 몽타주의 실행은 역설적으로 모든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영화가 남긴 궤적에서 우리는 잠재적으로 무한히 조합되고 변모하는 영화의 자의적 가능성을 배운다. 이처럼 영화가 여전히 비정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난폭한 몽타주의 장소라 믿는 이들이라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시네필 전주’ 섹션의 상영작들을 주목해봐도 좋을 것이다. 아래의 목록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거나 부정교합처럼 보이는 카오스의 몽타주를 예증하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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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몽타주(들)
‘그리고’의 영화적 역량을 대표하는 고다르의 영화로 80년대의 작품인 <리어왕>이 소개된다. 때로는 바보를, 때로는 미치광이를 자처하는 이 유일무이한 영화의 교사는 이 영화에서 셰익스피어의 후손을 내세워 눈앞에 있는 ‘이것’과 다른 곳에 있는 ‘저것’을 관류하는 영화의 방법론을 제안한다. 80년대 이후 고다르의 영화에서 거듭 인용되는 피에르 르베르디의 문장은 이 영화에서도 주의 깊게 제기된다. “이미지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현실에 의해 탄생한다.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 진실한 것일수록 이미지는 더욱 강력하고 감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르베르디의 암시처럼, 고다르는 <리어왕>에서 셰익스피어와 갱스터를, 영화(예술)의 복원과 코델리어의 강렬한 침묵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흔들리는 빛(전등, 촛불)의 진자운동을 결부 짓는다.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는 고다르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호숫가의 장면이 담겨 있다. 호수의 아름다움과 체르노빌의 재앙은 끊을 수 없이 맞닿아 있다. 고다르에게 있어 단일한 이미지의 창조란 가능하지 않다. 표상의 위기에 갇힌(호텔 방을 주된 무대로 삼는 이 영화에는 감옥에 관한 언급이 반복된다)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것은 회화와 자연, 책과 동물을 불러들이는 자의적 결합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미지 옆에 다른 이미지가, 합쳐지지 않는 상반된 두 현실이 접해 있을 뿐이다. <리어왕>은 <열정>, <카르멘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장대한 죽음과 기록의 소멸 앞에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를 재구축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80년대 고다르 영화의 한 기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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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는 <맘마로마>를 찍던 무렵에 “나는 한밤에 태양에 대해 꿈꿨다.”라는 메모를 적었다고 한다. 고다르가 타진하는 몽타주의 조건이 그러하듯, 파솔리니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한밤의 태양이라는 터무니없는 모순에 접근하는 것이다. <맘마로마>는 첫 장면에서 [최후의 만찬]의 구도를 연상시키는 결혼식장 안으로 돼지를 이끌고 들어오는 맘마 로마의 모습을 비춘다. 파솔리니는 불순하게도 신성한 기독교적 이미지에 돼지 울음소리를 덧대고, 결혼식이 열리는 공간에 매춘부의 신체를 틈입시킨다. 균질한 규칙으로 수습되지 않는 충돌적 장면으로 스크린을 여는 <맘마로마>가 그리는 로마는 질병의 도시이다. 거대한 병원이 나오고 인물들이 앓던 질병이 여러 차례 거론된다. 잔해로 남겨진 도시의 모든 것은 병들어 있고, 창궐한 증상은 영화 전체로 번질 것이다. 파솔리는 이 병적인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영화의 주요한 논리로 전유한다. 첫 장면의 불순한 배치와 반대로, <맘마 로마>는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묘사하면서 회화적이고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 에토레의 신체는 예수의 형상을 연상시키고, 맘마 로마는 길거리에서 교회를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성스러운 것은 비천한 것들로, 비천한 자들의 신체는 다시 신성한 이미지로 조직된다. 이러한 혼란과 변주를 통해 파솔리니의 카메라는 인물에게서 새어 나오는 강렬한 정념을 발견한다.
세르주 다네가 “방향감각을 완벽하게 흩트리는 영화”라고 표현한 파울로 로샤의 <사랑의 섬>도 주목할 만하다. 19세기 말에 중국과 일본을 오간 해군 장교이자 작가인 벤세슬라우 드 모라이스의 연대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식민지 역사, 문학, 연극의 표면을 가로지르며 비좁은 실내 공간과 적소에 배치된 거울을 활용하는 미장센을 통해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의 여정에 대한 조형적 해석을 제공한다. 파울로 로샤는 이 영화를 가리켜 “장인적이고, 무정부적이고, 예지력을 갖춘 영화”라고 말한다. 동아시아적 공간 구조에 관한 유럽적 탐색이라고 할 만한 이 독창적인 영화는 미스터리와 신비, 돌연한 충돌과 반복적인 화음을 일으키는 두 세계를 주시한다. 실내 장면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격자형 창틀과 거울은 대칭을 이루는 두 영역을 몽타주로 비추고 있다. 필견의 작품이다. 포르투갈의 위대한 작가이지만 여전히 국내 관객들에게 폭넓게 소개되지 않은 파울로 로샤의 세계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다큐멘터리 <파울루 로샤에 대하여>도 준비되어 있다. 로샤가 사망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그의 조수로 협업한 다큐멘터리의 연출자 사무엘 바르보자는 파울로 로샤야말로 영화 문법의 현대적 혁신을 구현한 작가였다고 평가한다. 다큐멘터리가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60년대 모던시네마 시기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로샤의 80년대 영화들이다. 은유적이고 우화적인 영화적 콜라주라 평가받는 <사랑의 섬>과 <달의 산>이 추구한 전위적 미학을 들여다보는 여정은 특히 인상적이다.
쿠바의 낯선 여성감독 사라 고메즈의 <어떤 방법으로>는 격동적인 분위기로 들끓던 혁명 이후의 시기를 통과하는 연인들을 보여준다. 아네스 바르다의 <안녕, 쿠바>가 부분적으로 연상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영향 관계를 거론하기 어려운 대담한 형식과 리듬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연인으로 거듭나는 교사와 노동자의 드라마를 한쪽에 비추고, 다른 한편에 인터뷰와 토론 장면들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를 배치한다. 픽션이 음악과 춤의 리듬으로 전개된다면, 반대편의 다큐멘터리는 개발이 한창인 도시에서 혁명을 논쟁한다. 춤과 노래의 박동과 토론과 인터뷰의 말이 숏/리버스 숏을 이루는 영화이자, (파솔리니가 창안한) 서로 다른 이미지와 사운드를 불규칙한 상상으로 배치하는 ‘시적 영화’의 형식을 쟁취하려는 작품이다. 쿠바 최초의 여성 감독 장편 연출작이자 사라 고메스의 마지막 영화가 되어버린 <어떤 방법으로>는 그 자체로 폭발적인 에너지의 작품이면서, 지속되지 못한 쿠바 영화의 특별한 역량을 보존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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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카오스를 추구하는 미지의 장소를 찾는다면 안제이 주와프스키의 <은빛 지구>를 탐험하기를 권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정치적 망명과 로만 폴란스키의 도피에 이르기까지 폴란드 영화사의 지울 수 없는 주제가 국가 단위의 강제 이주라면, <은빛 지구>는 그 테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뒤틀린 결과물이다. 지구를 떠나 새로운 문명을 찾는 이들의 여정으로 전개되는 스크린에는 사막과 바다, 초원과 지하동굴이 펼쳐진다. 기울어진 프레임과 조각난 숏의 연속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행동을 도모하지만, 세계를 구원하는 자의 위엄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몸짓, 강도 높은 폭력묘사, 권력과 지배를 향한 무구한 집착은 그래서 사멸을 예감하게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함께 상영되는 고다르, 로샤, 주와프스키의 80년대 작업은 권태와 매너리즘, 재앙과 소실에 붙잡힌 영화의 시기를 폭파하려는 자기파괴의 연대기처럼 느껴진다. 폴란드 당국에 의해 제작이 중단되고 필름 일부가 소실되어버린 이 논쟁적인 영화는 미완성의 권리를 획득한 불온의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제에는 영화의 제작과정과 뒷이야기를 추적한 <은빛 지구로의 귀환>이 함께 상영된다. 영화의 역사는 언제나 가시적인 것의 저편에 미완성된 기록들, 만들어지지 못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은빛 지구로의 귀환>은 우리가 마주한 영화가 아니라 보지 못한 표상을 포획하려는 역사의 기록이다.
그 밖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물리적 조건과 장치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들이 있다. 알리스 아그네스 키르히너의 <영화관을 말하다>는 영화에 열정을 바친 80대 부부의 사적인 삶과 베를린이 통과하는 영화사적/정치적 시간을 맞물려 서술하는 근사한 다큐멘터리다. 베를린의 키노 아르세날 극장을 설립한 에리카와 울리히 그레고르 부부는 50년대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당대의 논의를 극장에 가져오는 전령의 역할을 자임한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영화관에 투여한 시간에 바이마르의 도시 영화에서부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 그리고 고다르와 파스빈더와 빔 벤더스가 차례로 렌즈를 비춘 유럽의 거대한 영화도시인 베를린에 새겨진 영화사의 기록이 아름답게 투영되어 있음을 관측한다. 나머지 두 편은 관객의 욕망과 영화의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스크린이라는 장소에 관한 오디오 비주얼적 탐구이자 교육의 작업이다.
<테이킹>은 존 포드의 <역마차>에서 처음 나타난 모뉴먼트 밸리의 신화적 위상을 탐구하면서 미국의 영화 및 대중문화에 새겨진 근원적인 정체성을 짚어낸다. <사이코>의 샤워 장면을 분석한 <78/52>, 윌리엄 프리드킨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윌리엄 프리드킨, 엑소시스트를 말하다>와 같은 작업에서 장르영화의 제작 구조와 이를 관객이 수용하는 방식을 분석한 알렉산더 O. 필립이 존 포드와 그의 웨스턴적 풍경에 오디오 비주얼의 방법으로 접근한다. 마지막으로 니나 멩키스의 <세뇌된 시선>는 로라 멀비의 저명한 이론을 빌려 영화문법에 내재한 남성중심적 시선과 폭력성을 지적한다. 같은 섹션의 상영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용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구조를 명쾌한 어조로 탐문하는 두 다큐에는 영화의 영향력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자들의 시선이 돋보인다.
[글·김병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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