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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머니와 내가 영주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위독해졌다. 9월 11일 테러 사태 때문에 영주권 절차는 예정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아버지는 내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다. 2002년의 춘절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입원해 있었지만 춘절을 집에서 쇠고 싶어 하셨고, 병원에서도 허락을 해 주었다. 아버지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아셨다. 게다가 아버지는 내가 춘절 이튿날쯤 돌아올 것도 알고 계셨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던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외삼촌과 외삼촌의 오랜 벗들이 함께 아버지 곁을 지켜 주셨다. 숙모는 여러 해 동안 남편과 어린 딸을 북경에 남겨두고 미국에 체류 중이다. 외삼촌은 이번 춘절에 자기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낙담을 많이 했지만 기꺼이 아버지 간호를 떠맡아주셨다. 내가 돌아오던 날, 아버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가 걱정할까 봐 자신의 상태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신께 기적을 바라며 기도했고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내 경험이 가족이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깨달음이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날처럼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이런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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