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이 남긴 희생은 어마어마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는 사망자가 1만 4천여 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만 5천에서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사망자의 대다수는 무장대를 찾는다는 토벌대에 의해 발생(정부 발표 78.1%)했다. 즉, 절대적인 다수 사망자가 민간인이었다는 말이다. 그중 80%가 남자였다. 이러한 사정 탓인지 4.3사건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피해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이 연구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목소리들>은 실제로 사건을 겪었던 4명의 할머니의 증언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들이 당했던 끔찍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백사장에 끌려가 몰살당한 행렬 안에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할머니, 토벌대의 창으로 일곱 군데를 찔리고 죽은 척한 덕분에 살아난 할머니,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성원 대부분을 잃은 할머니 등 고난에서 간신히 생존한 이들의 증언이 가슴 아프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행됐던 성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보는 이를 치 떨리게 한다. 곳곳에 삽입되는 애니메이션은 당시 사건들을 재연하는 기능도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순화해 주기도 한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