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늙은 개 한 마리가 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개를 이 영화의 화자가 자세히 들여다본다. 감독이 지휘하는 카메라는 동네 사람들에게 그 개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질문을 건넨다. 그 개에 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다. 개에게 무관심한 듯 보이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을 조금씩 꺼내어 놓는다. 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 조각들 사이로 그들이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단서가 조금씩 드러난다. 카메라는 개에 관한 사람들의 기억과 실제 현실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응시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느 개의 삶의 자취를 추적하면서 그 개가 살았던 동네사람들의 삶의 자취도 드러낸다. 생명들이 살아온 시간의 퇴적이라는 결과 앞에서 이상하게도 관객은 다소 쓸쓸하고 참담한 심정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들에서 배려와 연대가 사라진 것은 아닌가라는 강한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