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1986년 서울 신림 사거리에서 있었던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분신 20주기를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실제 사건의 직간접 경험자이기도 한 김응수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의례적인 추모영상으로 만드는 대신, 자신을 포함한 20년 전 사건 당일을 경험한 이들의 묵혀둔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의 의미를 되묻는다. 인터뷰어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혹은 그러리라 추정되는) 사건의 명확한 ´진실´이 아니라 그 날의 파편들이다. 어떤 이는 김세진 형의 운동화가 기억이 난다고 했고, 어떤 이는 그 날의 날씨를 기억해낸다. 조각조각 모아진 기억들은 그 날의 흐릿한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결코 명확한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선명하고 고정된 것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인식론에 대한 반론이며, 이 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의 선정성에 대한 영화적 성찰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영화는 재연 장면이나 내레이션, 해설 자막, 삽입음악 등의 사용 없이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와 이미지 컷으로만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