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만만세!> OVA를 극장용으로 재편집한 <마로코>는 오시이 마모루의 유머가 작렬하던 초기 스타일 작품. 어느 날 근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미소녀(마로코)가 요모타 가(家)에 출현하고 이 단란한(?) 핵가족에는 대 혼란이 일어난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며 가족 해체와 재생을 반복하는 <마로코>는 홈드라마의 외피를 가뿐하게 조롱하며 허물어뜨린다. 영상 스타일도 예외는 아니다. 인물들은 연극 무대인양 관객을 향해 장광설의 대사를 던지거나, 갑자기 조명을 받아 스토리의 흐름을 바꾸는 등 기상천외한 소동극을 펼친다. 미래 사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실험적인 영상으로 풀어내는 오시이 마모루의 현재 스타일로 볼 때 엉뚱한 유머 코드로 범벅된 이 홈드라마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마로코>에도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낙관적 염세주의가 슬쩍 비친다. 홈드라마와 핵가족에 대한 장광설과 폐허의 이미지 등. 현대 사회에 대한 오시이 마모루식 알레고리로 가득 찬 이 실험적인 부조리극은 SF적 폭발은 없지만, 그래도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