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어촌 마을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 카오루는 앞이 안보이고 말을 못하는 노인을 돌보며 함께 살고 있다. 어촌의 정경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오프닝의 경쾌한 음악과 달리 영화의 전반부는 적막하고 음침하다. 노인은 장애인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감정만 있는 아이나 애완동물처럼 행동하고, 여인은 그를 극진히 보살피며, 그 둘 사이에는 섹슈얼한 긴장도 존재한다. 마치 라디오 해설처럼 들리는 보이스 오버 “카오루는 자신 없이 살 수 없는 남자를 발견해서 기뻤다”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영화를 더욱 더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반부가 넘어가면 이야기는 카오루와 노인의 관계, 정원사와 나무 등 초반의 중심에서 이탈한다. 노인의 행적을 추적하며 마주친 근대초기의 마을의 과거, 샤머니즘, 노인의 죽음 등은 이야기에 심각함을 더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농담처럼 다루어진다. 아오야마 신지의 진심이 궁금해질 때쯤 다시 영화는 시치미를 뚝 떼고 예의 보이스오버와 함께 노인과 카오루의 관계로 돌아온다. 노인이 죽은 후 벌어지는 카오루의 환상인 듯 실제인 듯한 일들은 영화에 마술적인 정취를 불어 넣고, 자연조명일 때 타무라 마사키의 촬영은 대담하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