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를 공부하기 좋은 나라는 어쩌면 중국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맘만 먹으면 동서고금의 걸작들을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중국의 해적판 스펙트럼은 의외로 넓은데, 중국인들에게 해적판 DVD는 영화를 즐기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다. 감독은 <자전거 도둑>에서 포르노에 이르는 다양한 해적판 위에 사회의 단면을 겹쳐 놓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해적판과 각양각색의 인연을 맺는다. 대학 교수는 강의를 위해 알모도바르 영화를 찾고, 영화 외에 다른 일엔 취미가 없어 불법판 파는 일에 나선 남자는 화대를 DVD로 치른다. 생활고에 찌들린 부부는 불법판을 보다 스스로 은행을 털 것을 결심하는가 하면 가짜 경찰 행세로 DVD를 강탈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는 DVD 장면과 현실 장면(그러나 이 역시 영화다)을 끝없이 교차시키면서 현실의 허무함을 드러낸다. 결국 불법판이 현실에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물들은 행복하지 못한 결말에 직면한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란 것은 결국 찰나의 환상일 뿐이란 걸까 아니면 현실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적일 수 있다는 것일까. <만연>은 영화를 향수하는 문화와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