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의 한 카페. 검은색 철테 안경 너머로 예리한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근대의 시간측정법은 잘못 됐다고 중얼거리는 전형적인 20세기 초 지식인의 모습을 한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창백하며 무심함과 근심을 동시에 안고 있는 얼굴로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한 젊은 남자를 유심히 살핀다. 1910년대 리스본에서 근대의 일상성을 예리하게 감지한 모더니스트 시인 페르난두 페수아와, 페수아가 1913년에 쓴「불안의 책」, 그리고 페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한 작중 인물 베르나르두 수아레스는 영화를 통해 21세기의 리스본에 되살아난다. 리스본에 있는 한 회계사 사무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던 베르나르두 수아레스가 사무실과 같은 거리에 있는 자신의 방을 오가며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일상의 단조로운 현실들 사이의 거리를 일기로 기록한「불안의 책」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즈」와「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영화화에 도전했던 조셉 스트릭이 그러했듯, 애초에 영화화되기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주앙 보텔료는 모두가 반대한 이 작업에 착수하면서 스스로‘책’이라는 한계에 갇히길 거부하는 이 초(超)시간적인 텍스트를 보여주기에 영화적인 시간성이야말로, 즉 시간의 순차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일상을 파편적이고 음악적인 리듬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영화의 시간성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그릇이라고 믿는다. 영화 속 인물들과 인물들의 부수적인 사건들은 어느덧 그들 스스로를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2010년 현재의 일부로 만들어간다. (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