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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알베르티나 카리, <금발머리 부부>
2021-10-14 11:00:00Hits 188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10-14

창작을 통해 기억하기
[함께 읽는 영화] 알베르티나 카리, <금발머리 부부>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어느덧 네 번째 특집 원고와 함께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알베르티나 카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금발머리 부부>를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금발머리 부부>를 '다큐멘터리'라 소개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피상적인 접근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군사 정권에 납치된 부모의 흔적을 추척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이 작품은, 작품 내에 알베르티나 카리 감독 본인을 대체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등 끊임없이 "현실과 픽션이라는 두 세계가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극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실험적인 형식"(문성경)을 선보이거든요.
 


이처럼 독특한 작품의 해설을 맡아주실 분으로 다행히 이다혜 기자를 초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다혜 기자는 영화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사려 깊은 해설로 국내 시네필에게 익히 알려진 분이지요.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활동 분야를 넓혀 현재는 도서와 영화에 관한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 라디오, 팟캐스트의 진행자로도 만나뵐 수 있는데요. 개중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근래 동명의 저서(2020)로도 출간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에 관한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유려히 안내해주기에 적합한 분인 것 같은데요! 이다혜의 시선으로 읽는 <금발머리 부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다혜 기자의 시선으로 읽는 <금발머리 부부>👇

1977년 2월 24일 아나 마리아 카루소와 로베르토 카리가 납치되었고, 같은 해에 살해되었다. 알베르티나 카리 감독의 부모는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다. '더러운 전쟁'은 호르헤 비델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집권기인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납치에 의한 강제 실종, 고문, 정보 조작, 살해를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당시 부부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안드레아, 파울라, 알베르티나. 부모가 납치된 해 고작 네 살이었던 막내 알베르티나는 이제 성인이 되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자 영화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구성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영화 말미에는 '알베르티나 카리'가 이런 말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러 번의 생일마다 초를 불면서 같은 소원을 비는 것도 싫어요. 
매해 생일마다 같은 소원을 빌었거든요. 엄마가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아빠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빨리 돌아오게 해달라고. 
사실 하나의 소원인데 더 강력하게 만들려고 세 개로 만들었죠."
성인이 된 지금도 생일이면 같은 소원을 빈다며 화면 속에서 씁쓸하게 헛웃음 짓는 여자는 배우 아날리아 꼬우세로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그가 출연 중인 영화 <금발머리 부부>의 감독 알베르티나 카리다. <금발머리 부부>는 감독의 부모에 대한 (세미)다큐멘터리다. 본인의 개인사에 얽힌 다큐멘터리인데 감독은 자신이 등장하는 대신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를 등장시킨다. 내용 면에서는 실화를 다루지만 형식 면에서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 지점에 있는 셈이다. 

영화감독이 한 일을 (이 영화의 유일한) 배우가 재현하고, 일부 인터뷰이들의 영상은 보여주지 않으며, 배우와 감독 포함 총 다섯인 스태프들의 영화 제작 과정이 중간중간 삽입된다. 게다가 플레이 모빌을 움직여 만든 영상이 다큐멘터리 사이에 끼어든다. 실화를 다룬다 해도 애초에 매끄럽게 조직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리 감독의 부모는 제목과 달리 금발 머리도 아니다. 카리 가족 이웃에 살았다는 사람은 가족 모두가 금발이었다고 반복해 확언하는데 그 자체가 기억의 오류다.


네 살 때 납치되고 실종되었다가 살해된 부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알베르티나 카리 감독은 부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옛날 살던 집의 이웃은 자기는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변명에 열심이다. 부모의 옛 동지는 카리 감독이 본 적 없는 부모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준다. 부모의 사망 기록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지만 그렇다고 살아있을 적의 부모에 대해 파악하기는 어렵다. <금발머리 부부>는 백발이 성성해진 부모님의 지인들이 말하는 장면을 작업실에서 틀어놓고 카리 감독을 연기하는 배우가 그 영상을 보는 장면을 찍는다. 증언은 다큐멘터리지만, 그 증언에 반응하는 카리 감독 자신의 반응은 배우가 연기하게 하는 방식.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공'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순간들도 도래하는데, 기억의 메커니즘 자체가 영화의 관심사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무지막지한 혼란을, <금발머리 부부>는 피하지 않는다. 감독은 진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증언을 무작정 수집해야 하는 상황에 있으며, 알아갈수록 분노와 원망이 동시에 치솟는다. 그래서 감독 본인이 카메라 앞에 서거나, 인터뷰이들만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동시에 창작하는 과정의 감정적 파고를 표현하기 위해서 감독은 자신을 대신 연기할 배우를 캐스팅한 셈이다. 감독 자신의 얼굴도 카메라 뒤에 선 채로 종종 영화에 담기기는 하지만.


어느 날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다. 어느 날 카리 감독은 액자 가게에 갔다가 도축장 사진들을 보게 된다. 같이 간 친구는 사진을 보고 "작가가 고문당했구나"라고 한다. 가게 주인은 사진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 얼마 뒤 감독의 둘째 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부모님이 갇혀있던 수용소의 유일한 생존자를 만났다고. 그 사람은 바로 감독이 본 도살장 사진의 작가였다. 그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실종자 조사위원회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며 영상 촬영을 일절 거부했지만, 카리 감독의 부모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회고에 따르면 수용소의 고문 담당자는 갇혀 있는 사람들과 바깥의 가족 사이에서 편지 전달책을 하기도 했다. 카리 자매들이 받은 부모님의 편지를 중간에서 전한 사람도, 그들을 총살한 사람도 그였다. 
"나는 공포와 폭력의 시대에 (부모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위협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군사정권 시절 내 이름은 위험을 뜻했고 사람들은 나를 거부하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특정 부류에게 내 이름을 말하면 당혹과 연민이 섞인 이상한 눈길을 받는다. 

 내 존재의 시작을 있게 한 부모의 부재 속에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은 내게 집착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강박은 일상생활과 잘 어우러지지도 않았고 항상 고무적이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내가 궁금해하던) 답은 기억의 안개 속에서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내레이션은 왜 이 작업이 필요했는지를 드러낸다. 무엇을 찍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었는데, 하필 그 알지 못하는 내용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것인 자의 무참한 당혹이 <금발머리 부부>를 이끄는 힘이다. 작은 영화팀이 함께 영화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눈길을 끈다. 내용 면에서는 칠레의 군부 독재와 납치, 실종에 관련한 이야기를 극영화로 담아낸 코스타 가브라스의 <의문의 실종>(1983)을, 형식 면에서는 인도네시아 군부 독재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특이한 다큐멘터리(여기서는 당시 사건의 가해자 중 한 사람에게 연기를 시킨다)로 완성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크리스틴 신의 <액트 오브 킬링>(2012)을 나란히 놓고 보기를 권한다.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한 채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부모는 또한 하나의 픽션이기도 하다. 그들은 용감하고 아름다우며 선한 부모이며, 최고의 부모이자 영웅들이다. 영원히 사라졌기에 스크린 위로 결코 나타나지 못할 두 사람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 것과 믿어야만 하는 것 사이에, 분노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 지속된 긴장이 있다.
*루시아 살라스, 「폭풍의 눈 속에서 함께: 알베르티나 카리의 <금발머리 부부>」 
 『아이 엠 인디펜던트』, p.307.

영화 후반부에서, 카리 감독을 연기하는 배우는 숲에서 끓어오르는 비명을 연달아 내뱉는다. 절박한 비명 위로 다시 내레이션이 깔린다. 
"망자의 영혼은 어디로 가나. 모두 한곳에 있나 아니면 살해된 이들은 따로 있나. 
다음 세대 안에 있나? 그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 안에? 기억은 얼마나 보존되고 얼마나 변하는가?"
정돈된 말을 압도하는 외마디 비명이 계속 화면을 울린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면, 기억의 복구 작업이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해 필요했음을 알게 된다. 금발 가발을 쓰고 나란히 걷는 영화팀 다섯의 어깨 위로 일출의 빛이 내려앉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살아보고 싶었던 가상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죽지 않고, 세 딸이 모두 성인이 되어 부모와 나란히 걷는 다섯의 뒷모습. 이 장면은 픽션인가 다큐멘터리인가. 우리의 기억은, 픽션인가 다큐멘터리인가. 

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진행하고 동명의 책을 펴냈다.
<아무튼, 스릴러>를 비롯한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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