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서른 살을 앞둔 여자 수련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수련은 아버지와 비슷한 데자뷔의 운명을 예감하게 된다. 처음에 절망에 빠졌던 수련은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남은 일상의 시간을 알뜰하게 챙기며 남은 삶을 정리하려는 수련 앞에 스물여섯 젊은 청년이 나타난다. 그는 수련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임왕태의 장편 데뷔작 <가을 우체국>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플롯을 취하고 있지만 일상의 결을 섬세하게 품는 호흡 면에서 호감을 주는 영화이다. 이는 임헌식, 송옥숙 등의 노련한 연기자들이 서브플롯을 지탱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주연을 맡은 권보아는 죽음을 앞두고 있으나 건강한 맑음을 잃지 않는 극중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스토리텔링에 충실한 보수적인 호흡의 연출인데도 뜻밖에 다른 일상의 공기를 감지하게 하는 미덕이 있다. 텔레비전 단막극과 유사한 외양을 취하지만 등장인물이 말하는 것 이상을 담는 화면의 그릇이 이야기의 범위를 확장하는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