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고시촌을 전전하고 있는 교환은 ‘키보드 워리어’다. 광화문 촛불 시위 장면에 인기 게임인 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내레이션을 덧씌워 호평을 받지만 목소리의 주인인 성우에게 고발을 당해 경찰서를 가게 된다. 한편 낡은 목욕탕을 운영하다 접고 좌익 척결을 위해 매일 탑골공원에 나가는 정수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다가 국립묘지에 묻히길 소망하는 노인이다. 어느 날 우연한 일로 엮인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고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충족시키는 거사를 도모하게 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귀여워>, <창피해>로 고유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증명했던 김수현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이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와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내러티브를 펼쳤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에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훨씬 단순하게 응축됐지만 두 주인공을 축으로 그들이 관계 맺는 인물들과 세상의 복잡한 요지경을 응시하는 김수현의 시각 스케일은 여전히 넓다. 이념대립으로 병들어 가는 한국사회의 속내를 궁극의 인간애로 감싸 안는 이 영화는 기묘한 유머감각으로 보기 드문 블랙코미디의 수준에 다다른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