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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열기가 세계를 휩쓴 직후인 1969년, 아르헨티나는 기나긴 군사독재 중 유화 국면을 맞는다. 검열이 느슨해진 틈을 타, 우고 산티아고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및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빗댄 <인베이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과 연출을 도맡는다. 권총 한 자루만으로 무력 침공을 시도하는 잔악한 무리를 막으려 동분서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일리어드』를 떠오르게 한다. 침공을 막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트럭과 송신 장치는 트로이의 목마와 닮았고, 용맹하고 정의로우나 시작부터 패퇴가 예정되어 있는 인물들의 운명은 트로이인들과 같다. 고다르의 <알파빌>처럼, B급 범죄물이면서 현실 풍경을 배경으로 한 저예산 SF의 외양을 지닌 영화는, 가상의 도시 아킬레아를 무대로 삼았으나 기실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담은 지정학적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또,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사를 극 사실주의로 기술하는 역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또 한 번 일어날 쿠데타와 길고 엄혹한 저항의 시간을 예감하는 결말 시퀀스는, 1973년 칠레 산티아고 스타디움에서의 학살마저 미리 보여주는 듯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편, 괴수나 새의 울음, 노이즈, 탱고 선율 등이 직조하는 초현실적 사운드 스케이프, 흑백 필름이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를 마술처럼 활용하는 미장센과 외화면 구성의 아름다움은, 이 작품을 상투적인 정치 영화가 아니라 세계영화사의 숨은 보석으로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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