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자, 신랄한 평론가로 알려진 바르베 도르빌리가 1874년에 발표한 작품집『악녀들』(Les Diaboliques)은 비밀스런 남녀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중성에 천착한 논쟁작이었다. 이 작품은 이후 수많은 다른 예술 장르에도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는데, 특히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만든 동명의 영화가 대표적이었다. 히타 아세베두 고미스는 6개의 이야기 중에서‘어느 여인의 복수’를 원작으로 했는데, 이미 14년 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귀족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의 뒤에 놓인 거짓과 위선을 고발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했던 원작과 궤를 같이 하여 고미스는 소설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아름답게 형상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문학어가 드러내는 정서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동시에 19세기 귀족의 문화가 가진 형식미를 완벽한 미장센으로 구축했다. 또한 공작 부인이지만 매춘부의 삶을 선택한 주인공 여성과 여러 여성과의 경험을 지나 모든 것에 싫증이 나 버린 댄디한 귀족 남성으로 이원화된 이야기를 중층화된 연극 무대처럼 구성함으로서 드라마틱함을 강조했다. 그녀가 전해주는 회상은 독립적인 무대로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유연하게 이어지는데, 이는 비극적 사랑이 남긴 잔혹한 현재를 동일한 심리적 연장선에 놓으려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오히려 영화의 전체적 구조를 무대의 앞뒷면으로 분리시키고 화자를 배치하면서 극의 여닫음이 주는 효과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