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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이건 100프로 흑역사 생성이다”
2021-05-08 11:00:00Hits 527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이건 100프로 흑역사 생성이다"
: 한국경쟁 대상 수상작 <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임지선 감독



19살과 20살. 고작 1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함께 추억의 무게가 가벼이 여겨질 만큼 길고 깊은 시간이기도 하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관계의 변화를 겪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적인 갈등 대신 무심한 말 한마디에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미묘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성적표의 김민영>으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이재은, 임지선 감독은 2017년 한겨레 영화워크숍에서 수업을 들으며 함께 감독으로서의 꿈을 키워왔다. “표현은 거칠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소노 시온 감독”(이재은)과 “이창동 감독의 예측 불가성을 좋아하는”(임지선) 두 감독의 취향이 <성적표의 김민영>에도 잘 녹아들어 있다.


▲(왼쪽부터) 이재은 감독, 임지선 감독


첫 장편으로 전주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했다.
이재은 감사하다. 큰 기대 없이 시상식에 갔는데 대상에 이름이 불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상 받고 내려온 뒤로도 둘이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웃음)
임지선/해외 심사위원분들이 우리 영화의 정서를 이해해주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굉장히 좋아해주셨다고 들었다. 함께한 배우, 스탭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성적표의 김민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재은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들뜬 마음이 무색할 만큼 서운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어쩌면 그 서운함의 크기가,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그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두 감독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임지선 시나리오는 재은이 쓴 초고를 바탕으로 함께 발전시켰다. 주요 캐릭터가 정희와 민영이다 보니 재은이 정희를, 내가 민영을 맡아서 대사를 직접 읽어보곤 했다. 연출과 후반작업은 뚜렷한 역할 분담 없이 컴퓨터를 옆에 두고 같이 작업해나갔다.


▲(왼쪽부터) 임지선 감독, 이재은 감독


세 사람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고등학생 때처럼 함께 삼행시를 짓고 이를 공유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삼행시란 주제를 택한 이유는 뭔가.
임지선 정희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는데 삼행시 형식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은 보통 삼행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희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은데 이걸 문학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다. 정희와 민영, 수산나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놀이이자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건 100프로 흑역사 생성이다"라며 세 친구가 처음으로 화면에 등장하고, 곧바로 삼행시 클럽을 해체한다. 혹시 감독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도입부였다.
임지선 사실 그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과 잘 맞닿아 있다.
이재은 해체식으로 영화를 시작한 건 처음부터 정희와 민영을 떼어놓고 가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3들이라 공부를 해야 하니까. (웃음) 친구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멀어지는데, 그 상황의 전조 현상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다.


입시나 대학 동기들과의 관계, 성적 등 자칫 어둡게 그려질 수 있는 주제를 밝게 풀어간다.
이재은 어두워야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어떤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실적으로 상황을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임지선 애초에 <성적표의 김민영>을 같이 연출하기로 한 것도 둘의 상황이 너무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극적 사건 대신 작은 마찰들을 중심으로 다루려 했고 그게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톤 앤드 매너도 너무 세련되지 않게, 오히려 촌스럽게 가져가는 게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미술과 촬영, 연기톤까지 정제되지 않은 느낌을 유지하려 했다.


▲이재은 감독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도 있을까.
이재은 일본영화들을 많이 참고했고 그중에서도 <요노스케 이야기>를 많이 봤다. 요노스케란 시골 청년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생긴 일을 그린 영화인데 해당 인물의 매력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처럼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그리고 싶었다.


세명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성하게 됐나. 유학, 편입 준비, 대학 진학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인물들이 제각각 다른 길을 간다.
임지선 고등학생 땐 모든 일상을 함께하니 서로 잘 맞는 사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졸업 후엔 각자 상황이 달라지면서 관계에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 성향이 다른 세 인물이 이 과정을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에 주목해보고 싶었다.
이재은 정희와 민영의 갈등이 주축이지만, 해외에 있는 수산나 역시 정희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미묘하게 섭섭함을 느끼는 관계를 다양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하루 동안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변했음을 그려내야 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재은 실제로 그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은 많은 수정을 거쳤다. 이때도 지선이와 각각 인물들을 맡아 대화하고 싸워도 봤다. 어떤 행동과 말을 했을 때 감정이 상하는지 다양한 상황을 대입했다. 어떤 순간이든 가장 중요한 건 미묘함이었다. 그걸 계속 가져가려 했다.
임지선 분위기가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는 전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실제로 사건들의 순서도 많이 바꿨다. 갈등이 크게 일진 않지만, 이런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의 정희의 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재은 그 편지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친구간의 관계, 특히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게 어느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 그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준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전부 내보이는 상황을 정희를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도 정희와 민영이의 감정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글 조현나·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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